이사장 인사말

재경춘천여자고등학교동문장학재단 3대 이사장 이순형님의 인사말을 전합니다.

세월의 다리 넘어 선후배의 소망을 잇는 장학재단


장학재단이 설립된 지 5년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참으로 세월이 혼자 빨리 내달려 그 세월의 다리 끝에 서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교수직 38년 근무하고 정년퇴임한 후 모교 동기들이 동창회에 나와 봉사하라고 해 불려 나왔습니다. 2018년 회장직을 맡고 동창회 재정을 살펴보니 동창회가 장학금 2억 8천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년에 접어든 선배들이 젊었을 때부터 수십 년 동안 모아둔 목돈이었습니다. 격년제로 총회를 마칠 때마다 아껴둔 행사운영비 잔액과 개별 기부금을 장학금으로 모아두었던 것입니다.

그 큰돈을 모은 뒷이야기가 재경춘천여고동창회에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기금을 지키기 위해 한 은행 구좌를 세 사람 공동으로 유지해 왔다는 사실, 병원에 입원한 전 회장님을 위로하기 위해 운영비로 꽃을 사들고 갔다가 혼쭐났다는 등 장학금을 마련하려는 선배님들의 뜨거운 열정이 후배들에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선배들의 염원을 읽을 수 있었고 후배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장학금이 제대로 유지되려면 정부가 공인한 재단법인을 통해서 운영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에선 10억 기금으로도 재단법인을 만들기 어렵다고 했습니다만, 강원도교육청에선 3억 이상 기금으로 재단법인을 만들 수 있다는 담당자의 말을 듣고서 그 때부터 장학재단 설립을 위한 기금 마련을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게 장학재단 설립을 서두르느냐는 이견도 있었습니다. 이미 큰 기금이 마련되어 있었기에 마음을 모아서 단시간에 마무리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의견대로 천천히 일을 진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 사태로 장학재단 설립은 물거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장학재단 설립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업이라는데 많은 동문들이 뜻을 모았고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장학기금에 보탰습니다. 제 동기인 31기 동문 13명이 각자 100만원을 기부했습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재정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마는 동문들은 기꺼이 기부금을 보내주었습니다. 내 삶을 돌아볼 때 평소 아껴 모은 돈을 쓰고도 흐뭇했던 적이 유일하게 두어 차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대학 등록금을 냈을 때 외에 모교 장학금에 기탁했을 때와 내가 근무한 대학 발전기금에 장학금을 냈을 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돈은 언제나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부족한 재정상태에서 사용처의 우선순위를 바꾸지 않고서는 장학금 기부가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부금을 보내준 동문들에게 감사하고 그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90세를 바라보는 동문이 100만원이라는 큰돈을 주셨을 때 그 감동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동문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협조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후학을 키우는 장학재단의 역할을 이해하고 재단 설립 모금에 동참해준 동기들과 선후배님들이 진정 고맙기만 합니다.

2020년 회장 이취임 총회에서 모은 기부금을 넣어 기본자산 4억을 1년 정기 예금하였습니다.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윤금희 동문을 초대 이사장으로 올린 장학재단 신청서류가 2020년 3월 정부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바야흐로 재단법인 재경춘천여자고등학교동문장학재단이 탄생한 것입니다. 초대이사장은 이화여대 윤금희 명예교수께서 맡으셨습니다. 동창회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신 존경받는 선배이셨습니다. 장학재단은 재경춘여고동창회에 더 이상 재정적으로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독립선언을 했습니다. 독립선언 당시 운영비인 보통재산은 1백6십만 원에 불과했고, 4억을 맡긴 시중은행의 이자율도 2% 정도였기에 앞으로 장학재단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장학재단의 재정을 걱정하던 차에 구원 투수가 나타났는데, 바로 2대 안복준 이사장이었습니다. 자신의 평생소원이 모교의 장학재단을 세우는 일이었다는 안복준 동문은 내과병원을 운영하는 남편 이만선 원장의 이해와 협조로 3년 동안 매해 1천만 원씩을 기부했습니다. 이 기부금이 장학재단이 초기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문들 사이에서 장학재단에 대한 인식과 참여 열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매해 장학금을 충당해야 하는 재정적 부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여전히 과제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동문들이 점차 노년의 생활고를 겪을 터라서 더 이상 기부를 지속적으로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해결책으로 2024년 11월에 제가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10명이던 이사 수를 20명으로 변경해 이사회비로 장학금과 기본 운영비를 충당하도록 했습니다. 그 외에 운영경비는 최대한 절약했습니다.

해가 거듭하면서 장학재단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함께 하는 이사들은 삶의 소중한 의미를 나눈 동지가 되었습니다. 즐거운 일상을 함께 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엮은 작은 여행 중에 우리가 산과 바다에서 나눈 이야기와 경험이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대차를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신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장학사업을 통한 상호 이해에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의미가 더해져서 세월을 관조하면서 아름다운 노년을 맞을 것을 기대합니다.

앞으로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 우리는 더 늙어갈 것이지만, 그 세월의 다리 끝에 후학들이 있고 그들이 우리의 희망을 품고 성장하고 발전할 것입니다. 우리가 장학사업을 통해 후학들이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여는 일에 작은 보탬이 될 것을 소망하였듯, 장차 그들도 우리의 뜻을 이해하고 장학사업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장학재단은 세월을 넘어서 선배들의 의지와 열정으로 미래 세대를 이끌어가는 굳건한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믿습니다.

2025년 10월 18일
재경춘천여자고등학교동문장학재단 제3대 이사장 이 순 형